제목
한글과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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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어려운 글자다. 좋게 만들기 어렵고, 잘 만들기 어려운 글자다. 처음부터 넋두리하고 싶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한글을 무조건 애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앓는 소리를 한다. 나는 사실 어느 쪽도 아니고 싶었다. 하지만 만들면서, 만드는 사람입장에서 한글은 참으로 까다롭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만들어야 하는 글자 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획수가 많아서도 아니다. 그렇다고 자소가 유연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한글이 다른 문자보다 까다로운 이유는 독창적이라 불리는 독특한 구조에서 비롯된다. 한글의 구조는 말 그대로 독창적이다. 다른 문자와 차별된다. 그들의 문법으로 풀 수 없고, 일반 조형으로 해석하기에도 까다롭다. 좋든 싫든 한글은 한글만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고민되어야 하는 문자인 것이다.
글자<공간>작업 시작부터 끝까지 전체를 지배했던 화두가 있다. 바로 균형(balance)이다. 한글이 어렵고, 까다로운 것은 균형을 통해 드러난다. 감각적으로 균형을 맞추기 어려운 문자이다. 낱글자의 균형이 맞추기 어렵고, 글자들 간의 균형을 통일(혹은 조화)시키기 어렵다. 문자(활자)에 있어 균형은 당연한 덕목이다. 균형은 조화이며 통일된 성질을 뜻한다. 다른 문자들 모두 균형을 가져야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한글만큼 비중이 높거나, 까다롭거나, 절실하지는 않다. 글자<공간>은 한글 구조가 균형과 맞닿아 있다고 봤다. 한글의 독특한(그래서 독창적인) 구조가 균형을 방해하지 않는지 의심했다. 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서 구조를 이해해야만 했다. 때로는 일반조형이론으로, 아니면 창제원리로, 그것도 아니면 완전히 분해해서라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파악하고 싶었다. 구조의 완전한 이해는 곧 균형을 획득하는 것이리라 믿었기 때문이다.